1. 멈춰버린 일상,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온 IgA 신증
안녕하세요. 저는 81년생, 올해로 40대 중반에 접어든 평범한 주부입니다. 라디오 PD를 꿈꾸던 여고생이 갑자기 정치부 기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지만, 정치외교학이라는 학문이 실생활에 밀접한 학문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인간 사회의 권력관계와 국가 간의 상호작용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었기에, 치열하게 토론하며 세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좀 더 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는 싫어서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본사 직원인 '서비스텍(Service Technician)'이 되기 위해 아웃백에 입사하여 서버, 호스트 등 다양한 역할로 식당 서비스업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경험을 살려, 어머니의 한식당에서 부사장으로서 어머니를 도와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면서 홀 업무뿐만 아니라 주방 업무를 배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식당자영업이라는 것이 남들 일할 때도 일하고, 남들 쉴 때는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식사 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일이 끝나는 밤 10시가 넘어서 야식을 먹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쉬는 저에게 짜고 자극적인 대중음식의 음식들은 주식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젊었을 땐 몰랐죠. 그때의 잘못된 식생활 습관이 지금의 제 병을 만든 부싯돌이 되었다는 것을.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5년 연애 후 결혼하고 바로 첫 아이가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출산 후 도우미 없이 육아하다 보니 남편의 많은 도움에도 불구하고 제 끼니를 챙기는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한 끼는 배달 음식으로 우고, 남편이 돌아와 아이를 봐주면 저녁 시간에 그나마 신경을 써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가 두 살이 되면서 둘째를 계획했고 둘째를 가지기 전에 건강검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진행한 검진에서 '단백뇨'와 '혈뇨'가 보이니 정밀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주변이나 가족 중 신장과 관련하여 큰 병이 있던 사람이 없었기에 '단백뇨'나 '혈뇨'가 보인다는 것이 신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추가 검사나 치료 없이 둘째를 갖게 되었고, 첫째를 출산했던 병원에서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출산할 것을 권유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었던 거죠. 최대한 저나 태아에게 위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식이요법을 하였고,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백일 일주일을 앞두고 미뤄뒀던 신장 조직검사를 하였고, 그 결과는 이름도 생소한 'IgA 신증(IgA Nephropathy)'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내 건강을 지켜줘야 하는 면역계가 이상이 생겨 내 신장의 사구체를 공격해 염증이 생기는 병'이라 하시더라고요. 건강검진 후 추가 정밀검사를 통해 진단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있었을 텐데. 초반에는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지금은 3개월마다 정식적으로 병원을 내원하며 많은 약을 먹고 있습니다.
다른 병들은 징후라도 있는데 이 신장과 관련된 병들은 건강검진을 하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가 결국 알게 되었을 때는 큰 병이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라도 알게 돼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요? 그 때의 둘째가 올해 10살(아직 생일은 안 지났으니 만 나이로 8세네요.)이 되었으니 저의 투병 생활도 10년이 된 이 시점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게라도 알게 되어 저의 무너진 식습관을 고쳐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아주 가끔은 감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힘든 부분이 더 많은 건 사실입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IgA 신증이었기에 10년이라는 시간도 완벽한 대처법을 만들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2. 왜 '단순한 관리'가 아닌 '영양학 공부'인가?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그저 막막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저염식을 하세요", "단백질을 조절하세요"라고 말하지만, 정작 부엌에서 매일 음식을 만드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어야 할지 매 순간이 숙제였습니다. 특히, 첫째 5살, 둘째 3살이 되었던 2018년 겨울, 어머니의 긴급한 요청으로 다시 식당에 복귀하였고, 그 생활이 2024년 5월까지 이어지면서 간신히 지켜왔던 건강의 마지노선이 완벽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불규칙한 식사 시간에 제때 약을 챙겨 먹지 못한 상태로 하루 10시간의 강도 높은 식당 업무는 저 같은 신장질환자가 아닌 건강한 보통 일반인에게도 무리인 생활이었을 겁니다. 2024년 초 건강검진에서 신장의 크기가 2년 전 찍었던 신장 사진에 비해 1/2이 줄었다는 결과에 1차 충격을 받았고, 이후 신장내과 정기검진에서 단백뇨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2배 이상 안 좋아지면서 극심한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난 40대 초반이고,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난 계속 아파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일이고 뭐고 내 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장 모든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식당 업계에 종사하며 음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 같은 '환자를 위한 치유식'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수많은 신장 관련 도서들을 쌓아 놓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 봐도,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찾아보며 캡처하고 수백 번 또 봐도 명쾌한 답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단순히 싱겁게 먹는 것을 넘어, 사구체 여과율(eGFR)을 지키고 단백뇨를 줄이기 위해 내 몸속에서 영양소가 어떻게 대사되는지, 그러려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그 과학적 원리를 알고 싶어졌습니다. 내 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입니다.
3. 40대 중반, 다시 학생이 되다: 방통대 식품영양학과 편입
저는 항상 학문과 직업은 일치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학문의 진정한 가치는 '진리 탐구와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가치일 때 빛이 난다고 생각하여, 배움과 업을 구분 짓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고된 식당 자영업 속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지적 허기짐을 채워 나갔고, 지금까지도 영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정치외교학사 학위를 뒤로하고, 오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3학년 편입 지원을 마쳤습니다.


그동안 제가 지녀 왔던 생각의 틀을 완전히 깨고, 접해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전공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제가 겪은 이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기초 영양학부터 생화학, 임상영양학까지.... 이제는 펜을 들고 제 몸을 연구하는 '디깅(Digging)'을 시작하려 합니다.
4. 블로그 'Digging for'를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 블로그의 도메인 이름인 'digging-for'는 건강을 향한 집요한 탐구를 의미합니다. 앞으로 저는 이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 IgA 신증 환우를 위한 체계적인 영양 관리법: 전공 공부를 통해 검증된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하겠습니다.
- 실전 저염/저단백 식단 레시피: 식당업 경험을 살려, 환자식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 40대 주부의 대학 생활 도전기: 늦깎이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과 학습 팁을 공유합니다.
5. 맺음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
IgA 신증이라는 질환은 저에게 시련이었지만, 동시에 영양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열쇠가 되었습니다. 혹시 저처럼 질병으로 인해 상실감을 느끼고 계시거나, 나이 때문에 새로운 공부를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가요? 제 도전이 여러분께 작은 위로와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체계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던 꼼꼼함으로 이제 내 몸의 영양을 설계하는 역사적인 한 발을 디뎌볼까 합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건강한 미래를 함께 '디깅'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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